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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8월 25일
북파크 카오스홀

[‘사회적 뇌의 탄생’ 북잼콘서트] “외계인 관점에서 보면 안 보이던 것들 보여”

등록일 2017.09.04
조회12,031

(왼쪽부터) 이대열 미국 예일대 신경과학과 석좌교수, 김학진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뇌과학 어벤져스’의 총출동은 강력했다. 지난 8월 2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북파크 카오스홀을 가득 메운 200여 관객에게서 그 힘을 느꼈다. 과학을 다룬 북잼 콘서트가 이처럼 뜨거운 관심을 받다니, 요즘 ‘핫’하다는 ‘뇌과학’에 대한 독자들의 목마름이 전해졌다.

이날 갈증 해결사로는 이대열 미국 예일대 신경과학과 석좌교수와 김학진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가 나섰다. 이들은 뇌과학, 심리학, 진화학 분야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뇌과학 어벤져스’다. ‘사회적 뇌의 탄생’ 북잼콘서트에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를 과학의 언어로 풀어냈다.

먼저 무대에 오른 이대열 교수는 ‘사회적 뇌’의 기초가 되는 ‘지능’을 밝히는 것으로 인트로 강연을 열었다. “이세돌 기사를 이긴 알파고가 이세돌 기사보다 지능이 높을까?”라고 질문을 던진 이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답을 내렸다. 이 교수는 “지능이란 다양한 환경 속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말한다면서 “알파고는 바둑은 잘 둘지 몰라도 말이나 요리처럼 예상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문제를 해결할 다양한 능력을 갖추지는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능은 자기 복제를 하는 생명체가 자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니고 있는 고유한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와 함께 “인간의 뇌는 사회적”이라면서 이는 “인간의 뇌가 커진 이유와 관련이 있다”고 해설했다.

“인간의 뇌가 커진 이유는 복잡한 사회에서 정치를 잘하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생활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사회적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기 위해서 사회적 지능이 생겨났고, 뇌도 커진 것이죠.”

이 교수는 이런 내용을 담아 최근 <지능의 탄생>(바다/2017년)을 출간하기도 했다.

“갑질하는 사람들, 내장피질 균형감각 기능 마비된 것”

뒤이어 마이크를 넘겨받은 김학진 교수는 ‘인정욕구와 합리적 이타주의’를 다룬 강연을 통해 요즘 사람들이 SNS에 열을 올리고, 사회 고위층이 ‘갑질’을 하는 까닭을 뇌과학의 관점에서 바라봤다.

“인간은 상황에 따라 접근 행동과 회피 행동을 하는데 이 두 행동 간에 충동이 벌어질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한 남성이 여자친구랑 길을 가고 있는데 앞에 미인이 걸어오면 이 남성은 접근과 회피 간에 갈등이 벌어지죠. 이때 둘 사이에 균형을 잡아주는 뇌 부위가 바로 복내측 전전두피질입니다.“

김 교수는 얼마 전 출판한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갈매나무/ 2017년) 원고를 출판사에 보낼 때 제목을 ‘복내측 전전두피질’로 했더니 출판사 사장이 다른 데를 알아보라는 식의 눈길을 줬다면서 이 강연에서는 ‘복내측 전전두피질’을 ‘내장피질’이라고 부르겠다고 밝혔다.

김 교수가 ‘내장피질’을 강조한 까닭이 있었다. 이타적인 사람들과 이기적인 사람들의 뇌구조를 분석하니 이 부위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는 거다. ‘땅콩 회항’이나 ‘공관병 갑질’처럼 계속 문제가 되고 있는 사회 고위층의 비상식적인 행동도 내장피질로 설명할 수 있다.

“사이코패스의 경우 선천적으로 내장피질의 기능이 떨어진 것일 수 있지만 갑자기 부를 쌓거나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게 된 사람들은 후천적으로 내장피질의 균형감각 기능이 마비됐다고 볼 수 있죠. 이들은 인정욕구가 급격히 증가돼 타인으로부터 정상적인 수준의 존중이나 감사를 받더라도 그에 만족하지 못하고 갑질 행동으로 표출하는 겁니다.”

인정욕구의 추구는 SNS상에서 ‘좋아요’수에 매달리는 현상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김 교수는 내장피질의 균형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제시하면서 “이 기준점이 나한테 적절한지 아닌지 끊임없이 점검하고 재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정리했다.

“사회 고도화될수록 공감능력 강화될 것”

앞선 강연자가 다음 강연자를 소개하는 식으로 진행된 북잼콘서트의 마지막 강연자로 오른 장대익 교수는 “서로 칭찬해주는 굉장히 이타적 모임에 오셨다”는 말로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든 뒤 그가 최근 내놓은 <울트라 소셜>(휴머니스트/ 2017년)의 엑기스만 뽑아 ‘초사회성의 진화와 문명의 사춘기’를 강의했다.

장 교수는 “요즘 ‘빅 픽처를 그려라, 숲을 보라”고들 하는데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외계인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라며 “외계인의 관점에서 지구 생명체를 보면 우리가 보지 못한 것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계인이 지구에 온다면 무엇을 가장 궁금해 할까. 장 교수는 “46억 년 지구 생명체의 역사에서 어떤 종도 이룩하지 못한 문명을 왜 호모 사피엔스만 유일하게 이룩했을까를 궁금해 할 것 같다”면서 “그 열쇠가 바로 초사회성”이라고 단언했다.

“외계인이 지구를 탐구하면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는 포유류나 파충류 등과는 다른 조직생활을 하고 있다는 걸 발견할 겁니다. 조직생활은 쉽게 말해 친구가 있다는 겁니다. 포유류도 가족은 있지만 친구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죠. 그런데 영장류는 친구들이 많은 건 물론 서로 스킨십도 하고 싸움도 하면서 조직생활을 해요. 영장류 간의 차이라면 집단 크기에 차이가 있다는 것뿐이죠.”

침팬지보다 뇌가 3.5배 정도 큰 인간은 역시 3~4배 정도 큰 집단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장 교수는 이를 가능하게 한 인간의 사회성을 ‘초사회성(ultra-sociality)’이라 명명했다. <울트라 소셜>(휴머니스트/ 2017년)에서는 초사회성을 ‘타인의 마음을 잘 읽어 내고 서로에게 끊임없이 배워 사람들 사이에서 대규모의 협력을 이끌어 낸 인간의 독특하고 강력한 사회적 능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몇몇 침팬지 실험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인간의 남다른 초사회성을 확인시킨 장 교수는 “인간만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볼 줄 아는 공감능력을 갖췄다”면서 “앞으로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공감능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장 교수는 인간의 초사회성이 아직은 불완전하다면서 <코스모스>(사이언스북스/ 2006년)를 쓴 칼 세이건의 말대로 아직 ‘문명의 사춘기’인 지구가 풀어야 할 숙제를 남기는 것으로 강연을 마쳤다.

1시간여 이어진 세 교수의 강연이 부족했는지 곧 이은 질의응답 시간은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SNS를 통해 받은 사전질문을 비롯해 즉석에서 이루어진 객석 질문까지 1시간 넘게 이어졌지만 시간 부족으로 아쉽게 손을 내려야 했던 사람들도 많았다. 아쉬움은 북잼콘서트가 끝나고 열린 저자 사인회에서 달랠 수 있었다.

한편 질의응답 시간은 질문마다 세 교수가 조금씩 다른 입장을 취해 그 차이를 살필 수 있어 흥미로웠다. 그 중 일부를 전한다.

“전쟁, 거부할 수 없는 인간의 어두운 측면" vs "점차 전쟁 줄어들 것"

Q 전쟁도 인간의 사회적 본성 때문에 일어나나요?

장대익: 인간은 초사회적 존재이긴 하지만 아직도 내집단과 외집단을 구분하고 있고, 내집단의 반경이 아직 멀리 못 가서 전쟁도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집단의 반경이 점점 커져서 전쟁이 점점 줄어들 거라고 낙관한다.

이대열: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모든 종의 지능은 항상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사회성이 더 진화한다고 전쟁이 없어질 거라고 보지 않는다.

김학진: 전쟁은 본성 때문에 생겨났다기보다는 전쟁을 만들어낼 만큼 중요한 또 다른 용도가 진화 과정에서 필요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 같다. 받아들여야 할 어두운 측면이다.

장대익: 두 분 말씀처럼 명암이 있기는 한데 극한을 제외하고 평균적으로는 사회가 예전보다 훨씬 덜 잔인해졌다고 생각한다. 10년 전만 해도 강아지를 발로 뻥 차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지금은 동물학대로 몰릴 정도이지 않나. 전쟁도 점점 줄어들 거다.

Q 우울증은 왜 진화한 걸까요?

이대열: 동물이 실패를 반복해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우울증의 기본이다. 부정적인 면에 계속 집착하는 게 안 좋긴 하지만 고통을 느끼는 능력을 상실하면 생존할 수 없는 것처럼 우울증이 도움이 되는 면도 있다. 실제로도 그런 사람들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오히려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김학진: 타인으로부터 지나치게 비난을 받거나 자존심 상하는 정보를 접할 때 내장피질의 기준점이 일시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그걸 회복할 기간과 계기가 필요한데 그렇지 못하고 기준점이 계속 균형상태에서 벗어나 있는 시간이 지속된다면 우울증으로 나타날 수 있다.

Q SNS 시대에 사회성이란 무엇일까요?

김학진: SNS는 그 자체로 인정욕구를 끊임없이 표출하는 활동의 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려지점이 있다. SNS는 인정욕구를 충족하는 방법을 쉽고 단순화시키고 즉각적으로 확장시켜 제공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중독상태에 빠뜨릴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장대익: 지금은 초연결사회로 사회성을 발휘하는 채널이 너무 많다는 뜻일 거다. 하지만 우리가 발휘할 수 있는 사회성의 총량은 일정하기 때문에 그렇게 걱정할 일은 아니지 않나 싶다.

이대열: 나는 기술 낙관론자이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처음엔 사람들이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좋게 쓰는 방향으로 늘 발전해 왔다. SNS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우리 사회가 아직은 그 도구를 적절하게 쓸 솔루션을 찾지 못해서 부작용이 있는 거지 곧 인간성에 맞는 특징을 지니도록 발전할 거라고 본다.

by 글/사진신정임(북DB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