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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어떤 시기이든 봄은 오게 마련이고 그렇게 봄이 오면 다시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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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저녁 서울 한남동 복합문화공간 북파크에서는 공지영 작가의 단편소설집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해냄출판사/ 2017년) 속 한 구절이 낭독됐다. 그와 함께 인터파크도서(대표 주세훈) 오픈 20주년 기념 북잼콘서트의 주인공인 공지영 작가의 강연 ‘우리들의 아름다운 봄 이야기’가 시작됐다. 객석은 사전신청을 통해 초대된 1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300명이 넘는 독자들로 가득 차 한국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진행자인 팝칼럼니스트 김태훈씨의 소개로 무대에 오른 공지영 작가는 5월 18일을 맞는 소회로 짧은 강연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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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을 바꿔놓은 날, 여러분과 만나 기쁩니다. 1980년 5월 18일의 진실을 안 순간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었어요. 지금도 광주의 진실을 처음 알던 날 뙤약볕 내리 쬐던 거리를 입을 틀어막고 걸어갔던 스물한 살의 제가 생각납니다. 그때 너무도 슬프고 분노했던 것이 저의 에너지가 돼서 아마 지금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까지 온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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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공지영 작가는 사회문제에 대해 계속 발언하는 것에 대해서도 당당히 소신을 밝혔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는 나라에 살아야 한다. 작가로서 저는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한 그는 “인간의 마음은 어느 한 가지만 억압할 수 없어서 우리가 정치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편견을 가지는 순간 모든 상상력이 억압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당장 정권 바뀌고 피부로 체감하지 않으세요? 정치는 미세먼지의 양까지 조절하는 중요한 것이잖아요. 문재인 정부가 잘한다면 저는 이제부터 그동안 쓰고 싶었던 연애소설도 쓰고 우주에 관한 소설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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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잘한다면 연애소설도 쓰고 우주소설도 쓸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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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밤을 즐깁시다”로 끝을 맺은 강연은 김태훈씨와의 대담으로 이어졌다. 공지영 작가가 13년 만에 낸 단편소설집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속 숨어 있는 다양한 의미들을 중심으로 펼쳐진 대담은 김태훈씨의 입담과 공지영 작가의 재치 있는 답변으로 청중들에게 시종일관 웃음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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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작가는 13년 만에 단편집을 낸 감회를 “‘13년이 이렇게 빨리 가다니, 앞으로 13년 후면 70이네’ 이런 생각을 했다”는 솔직한 말로 답하면서 “단편의 시대가 좀 가서 그저 작가로서 하나의 시대를 일단락 짓는다는 의미로 낸 책인데, 개인적으로 <인간의 예의> 이후 가장 큰 반향을 받는 것 같다”고 기뻐하면서 책에 담은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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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에게 개인적으로 많은 질문을 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어려운 시간을 통과했던 기록들인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이 하나 있었고요. 두 번째로,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어렸을 적부터 좋아했던 종류의 소설이에요. 이런 작품을 하나 쓰면서 앞으로는 압축된, 인생의 햇빛에 반짝하는 순간 드러나는 섬광 같은 걸 잡아서 하는 작업을 할 수 있겠다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막내가 스무 살이 됐으니까 나도 어느 정도 밥벌이에서 조금 물러나 이런 작업을 더 많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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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작가는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가 태어난 비화도 공개했다. 십몇 년 전 신자유주의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사람들을 막 해고시키던 때 그가 우연한 자리에서 만난 한 청년의 이야기가 모티브가 됐다고 한다. 청년은 “외할머니가 죽다 살아났는데 그때 외삼촌이 죽었다. 나는 외할머니가 너무 탐욕스러운 사람이어서 싫다”고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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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마디가 6개월째 죽어가면서 주변 인물과 동물들을 죽이는 할머니를 내세워 신자유주의적인 상황을 상징하는 괴기공포물을 탄생시켰다. 그 소설 맨 끝엔 주인공 메일 주소가 나오는데 도메인 주소가 ‘헬조선닷컴’이다. 단편집 속 가장 비현실적인 소설이 가장 현실적인 지점과 맞닿아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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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소설 ‘월춘 장구’에서는 작중 화자가 ‘이것이 소설일까. 소설은 무엇일까’라고 자문하고 있다. 실린 소설들 중에도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가 모호한 작품들이 많다. 자신의 고민이기도 할 이 질문에 공지영 작가는 어떤 대답을 찾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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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 감독님 자서전 맨 앞에 이런 부분이 있어요. ‘젊어서는 영화란 이것이라고 확실히 얘기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영화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어느 날 손주 일기장에서 그것을 발견했다.’ 손주 일기장에 이렇게 쓰여 있었대요. ‘우리 집 개는 참 이상하다. 어떤 날은 고양이처럼 애교를 부리고 어떤 날은 돼지 같고 어떤 날은 토끼처럼 뛰면서 어떤 날은 오소리 같은데 그래도 우리 집 개는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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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감독이 손주의 일기장에서 영화의 정체성을 찾은 것에 제가 다시 감동을 받아서 ‘맞다’ 싶어요. ‘내가 어떻게 하든, 이렇게 쓰는 것도 소설이고 저렇게 쓰는 것도 소설이다. 에세이 같기도 하고 영화 대본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보고서 같기도 하지만 소설이다’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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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씨는 작품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속에 ‘공지영’이란 작가님 이름이 직접 등장하고 작가와 화자가 끊임없이 겹친다며 “촌스러운 질문이지만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가”라는 질문을 조심스럽게 던졌다. 곤란할 법한 질문에 공지영 작가는 “자전적 이야기라고 말씀드린 작품이 <봉순이 언니>랑 <즐거운 나의 집>인데 반은 사실이고, 반은 허구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현실이 그렇게 잘 짜이고 재미있지 않다. 현실은 되게 지루하다. 이것들을 압축하고 모으고 약간 비틀어서 쓴다”는 답으로 잘 빠져나갔다. 원했던 답을 못 들은 김태훈씨는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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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었다’보다 ‘웃었다’가 더 기쁘다... 웃게 하는 게 정말 힘들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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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의 아쉬움은 현장 토크로 채워졌다. 다양한 연령대가 참석한 걸 반영하듯 질문자들의 연령도 제각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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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에 관심이 많다는 중년의 여성은 “<도가니>를 보면서 작가의 힘이 크다는 걸 느꼈다”며 “소외받고 고통받는 자들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를 물었다. 이에 대해 공지영 작가는 “약자에 대한 연민의 DNA가 없었다면 다른 직업을 택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면서 “전문가들은 전문적인 용어들을 많이 쓰고 일반인들은 복잡한 이야기를 잘 모르는데 제가 이 둘의 다리가 되어 줄 능력은 좀 타고난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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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년의 남성은 ‘5년 동안 경로당과 복지관에서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봉사한 이야기를 책으로 냈지만 잘 팔리지 않는다’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방법을 묻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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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올 때 한 번도 이 책이 어느 정도 팔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유는 내가 너무 실망하는 게 싫어서. 그래서 나는 70점만 맞겠다는 생각을 해요. ‘내가 만족하느냐 안 하느냐’가 70점이고, ‘여러분들이 얼마나 사주느냐’가 30점인데 이 30점을 관여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필히 상처받을 수밖에 없어요. 이 부분은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하는 걸로 맡기고 나머지는 내가 써놓고선 ‘나는 이 책이 정말 좋아’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그 부분은 제 노력의 영역이고 나머지는 운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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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 관객은 이번 소설집에서 웃음 장치를 발견했다며 작가가 의도한 건지 물었다. 공지영 작가는 “엄청 의도했다. 그런 부분을 알아봐주셔서 감사하다.”면서 “꼭 집에 예쁜 장식을 해놨는데 친구가 와서 ‘어머, 이거 예쁘다’ 하고 칭찬받는 느낌이다. 또 ‘울었다’보다 ‘웃었다’가 더 기쁘다. 웃게 하는 게 정말 힘들기 때문이다”라며 감사함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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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 관객은 “작가님은 생에 꼭 한 번 봄이 오기 마련이라고 했지만 ‘내게 봄은 없고 늘 한겨울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그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고 요청했다. 공지영 작가는 “너무 암울해서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결심했더니 그런 날들이 좀 왔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난 안 될 거야’ 하면 안 온다. ‘될 거야’라고 생각하라.”고 용기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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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것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아주 단순하고 좋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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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작가처럼 아이들을 혼자서 키우고 있다는 한 여성 관객은 “아이들을 다 키운 해방감이 어떨지 감히 생각할 수 없다”며 그 느낌을 듣고 싶다고도 했다. 내내 밝은 목소리로 대답을 이어가던 공지영 작가가 조금 낮고 떨리기까지 한 목소리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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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웬만하면 후회를 잘 안 하는 사람인데 아이들 다 키워놓고 나니까 사랑을 더 못 해준 것 같아서 후회돼요. 아이들에게 좀 더 잘해줄 찬스를 너무 많이 잃은 것 같아서 속상하고요. 그러니까 후회 없이 더 많은 시간 함께 하시고 더 많이 사랑해주세요. 생각보다 금방 크더라고요. 물론 다 키워놓으면 좋아요. 완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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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스물한 살이라는 한 여성은 사랑은 뭔지,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에서 ‘잘 헤어질 남자를 만나라’고 했는데 그런 남자를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공지영 작가는 “제가 우리 딸한테 하듯 얘기해볼까요?”라고 되물은 뒤 사랑의 원칙, 아니 관계를 맺는 원칙을 열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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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원칙은 너를 불행하게 하는 사람은 애인이건 친구건 당장 끊어야 돼요. ‘너 못생겼어, 너 얼굴 커, 너 왜 살쪘어’ 이런 친구하고는 다시는 만나면 안 돼요. 남자든 여자든. 나를 행복하게 해준 사람을 만나야 하죠. 두 번째 모든 관계의 원칙은 서로의 성장에 있어요. 이것을 저해하는 모든 관계는 관계를 더 이상 이어나가면 안 돼요. 정신적이고 지적이고 영적인 성장에 도움이 되는 관계만 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해요. 세 번째는 혼자서 무지무지 행복해지는 연습을 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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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를 자꾸 하다보면 자신이 마치 ‘여자 법륜스님’처럼 되는 것 같다는 공지영 작가에게 김태훈씨는 마지막으로 2017년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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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책 읽는 삶을 살고 싶어요.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것이 이 짧고 유한한 삶에서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가는 아주 단순하고 좋은 방법인 것 같다고 저 자신에게도 얘기하고 여러분에게도 얘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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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강연과 대담, 현장토크까지 1시간 30분 동안 자리를 지킨 관객들은 북파크에서 이어진 작가 사인회에서도 길게 늘어서 공지영 작가와의 직접 만남을 기다렸다. 이에 호응하듯 공지영 작가는 일일이 사인을 해주면서 인증샷까지 찍었다. 작가와 독자가 함께 한 그 봄날의 만남은 밤늦게까지 화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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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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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사진신정임(북DB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