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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한국 독자들을 만났다. 5월 19일,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열린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낭독회’에는 70여 명의 관객들이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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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서울국제문학포럼(5월 23일~25일) 참석 차 최초 내한한 알렉시예비치는 벨라루스의 여성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다. ‘목소리 소설’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증언 문학’의 새 길을 개척했다. 지난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국내 독자들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저서로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체르노빌의 목소리> <마지막 목격자들> <세컨드핸드 타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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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한 기간 동안 강연회, 낭독회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독자들과의 만남을 진행 중인 알렉시예비치는 이날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와 국내 신작 <아연 소년들>(문학동네, 2017)의 일부를 낭독하고 취재 뒷이야기 및 관객과의 질의응답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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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낭독회의 진행을 맡은 서평가 이현우와 함께 등장한 알렉시예비치는 관객들의 박수 소리에 웃음으로 화답했다. 낭독회 전, 작가의 약력을 소개하는 진행자의 말이 끝나자 인사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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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을 만나게 돼서 대단히 반갑습니다. 수십 개국을 다녀보았지만 한국에도 제 책을 읽어주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이 제게는 굉장히 흥미로운 일입니다. 제 책에 대한 반응이 나라별, 독자별로 다르거든요. 나라마다 역사가 있고 멘탈리티가 다르기 때문이죠. 그 다양한 반응에 대해 저도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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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40년간, 붉은 공산주의의 백과사전적인 역사적 사실들을 써오는 데 매진했습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알기를 원했어요. 그리고 공산주의라는 이념 자체가 굉장히 오랫동안 사람들을 좌지우지했고요. 소련 시절은 더 그러하죠. (중략) 저는 아직까지 끝없는 사람들의 고통을 전달하는 것에 있어 힘겨움을 느낍니다. 힘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저는 제 책이 특히 젊은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역사라는 것은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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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시예비치는 자신의 글쓰기가 단순한 작업 행위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현시대와 후대에 남길 수 있는 ‘증언의 목소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의 일부를 5분간 낭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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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시절, 사람의 말로 사건 전달하는 방식에 흥미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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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 후에는 진행자가 독자의 대표 자격으로 질문을 건넸다. 목소리 소설이라는 독특한 방식의 작업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알렉시예비치는 어린 시절의 환경부터 기자 시절 깨달은 점을 이유로 들며 상세히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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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대에 일어나는 사건들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런 사건들에 대해 참여하는 사람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소박하고 작은 사람들입니다. 예전의 문학에서는 영웅들을 많이 조명했죠. 그래서 사소하고 작은 사람들은 어둠 속에 살아가다 잊혔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시골에서 교사를 하셨어요. 저도 시골에서 살았고요. 시골에서 살 때 시골 사람들의 이야기나 말들이 제게는 대단히 흥미롭고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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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교육을 마치고 기자로 일하며 느끼게 된 것은 사람의 말로써 사건에 대해 전달받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알게 됐어요. 어떤 문서보다도 사람의 말을 통해 전해 듣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또 하나, 인생은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로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생각할 수 없는 공상이나 환상이 아니거든요. 시간이 있고 시대가 있다면,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걸 조각처럼 모아 어떤 사건들의 글을 완성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목소리 소설’이라는 것이 나오게 된 겁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출간 후 알게 됐습니다. ‘내가 맞는 일을 했구나’, ‘이 일은 맞는 거구나’. 이 작품을 쓰기 전에 나름대로 소설을 써보려고 했지만 그러기에는 열정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되어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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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을 맡은 서평가 이현우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은 뒤 ‘안도’와 ‘경악’을 느꼈다고 전했다. 이런 작가와 작품이 없었다면 이 세계가 텅 비어 있었을 것이라는 의미에서의 ‘경악’이었고, 한편으로는 이런 작품과 작가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안도’를 느낀다고 전했다. 또한 개인적으로 2015년의 가장 중요한 작가이자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함께 전하며, 이어질 <아연 소년들> 낭독에 대한 소개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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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목소리 소설인 <아연 소년들>은 알렉시예비치를 재판정에 세운 문제작으로 손꼽힌다. 출간 후 3년 뒤인 1998년, 알렉시예비치는 취재를 위해 인터뷰했던 일부 아프간 전쟁 참전 군인과 유가족 어머니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한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알렉시예비치가 <아연 소년들>로 법정 공방에 휘말렸을 당시 진술한 내용이 첨부되어 있다. 작가는 책에 실린 진술 내용의 일부를 낭독 전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이후 법정 진술의 한 대목을 낭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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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당시 개인적으로 충격을 받았던 사실은, 저와 인터뷰를 하며 이 이야기를 꼭 전해달라고 했던 분들이 결국 저를 그 이유로 법정에 서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그들을 다시 만났다는 점이 충격이었습니다. 지금 읽을 것은 제가 법정에서 증언했던 것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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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감수하는 고통이 ‘자유’로 돌아오지 않는 것은 힘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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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이 끝난 후, 진행자는 사전에 접수된 독자들의 질문으로 질의응답을 이어갔다. 시간 관계상 현장에서의 질의응답은 한 명의 독자만 참여할 수밖에 없었지만, 질문에 대한 상세한 답변이 이어졌다. 아래는 낭독회의 질의응답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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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계신데, 마음의 건강 상태나 심리상태는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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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질문들을 많이 받는데요. 사람들은 어떻게 그걸 견뎌냈느냐고 묻습니다. 사실 저는 견디는 것이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직업군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느 정도 시련을 감수해야 하고,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직업들이요. 의사, 군인, 작가 역시 그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목격을 했고 시신도 봤고 심지어 소련 병사들도 봤어요. 아프가니스탄 현지의 아이들과 노인들의 시신을 보기도 했습니다. 마음이 아프지만 저도 그걸 견뎌야 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일 뿐이고 그냥 그런 직업군에 속한 사람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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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탄압도 많이 받으셨는데 이런 작업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던 힘이나 원동력은 어디 있었습니까? 탄압이 두렵진 않으셨습니까? 현재 벨라루스나 러시아는 거의 독재체제인데 거기에 맞설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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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서의 일이 저의 업이기 때문입니다. 업에 충실해야 하고 또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힘든 주제들을 삼는 이유는 이걸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역사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회주의가 이야기하는 ‘붉은 유토피아’가 무엇인지를 백과사전처럼 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슈퍼우먼이라 이런 걸 써온 것이 아니라 전 단지 진실을 원했고 진실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물론 절대 쉬운 길은 아닙니다. 대단히 어려운 길이죠. 인간의 끝없는 고통은 반복되기까지 해요. 개인적으로 힘든 것은 항상 우리가 많은 고통을 감수하고 감내함에도 불구하고, 이 감내가 왜 자유로 돌아오지 않는 건지 그것이 힘이 듭니다. 러시아도 반은 군국주의 세계라고 할 수 있고요. 이런 노예 상태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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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체르노빌의 목소리>(새잎, 2011)를 10년간 썼다고 들었습니다. 그 시간을 한두 문장으로 정리하게 된다면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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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사태는 새로운 도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문제에 대한 변화예요. 후쿠시마 사태로 인한 방사능 문제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겠죠.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능력을 추월해버린 것입니다. 그런 방사능, 오염지역에서 사람들이 다 대피하고 인간이 떠난 곳에는 동물들이 뛰어다니거나 수목이 울창합니다. 결국 사람들이 떠난 자리를 자연이 채우고 있다는 걸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지배자’라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체르노빌 사태를 통해서 종지부를 찍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방사능 오염지역은 인간의 모습을 지워가고 있어요. 30년 후에는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마치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던 것처럼요. 제가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쓰는 데 10년이 걸린 이유는 거기에 담긴 함의가 ‘철학적 수수께끼’였기 때문입니다. 줄거리를 안티 사이언스나 안티 러시아로 했으면 더 금방 썼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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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문학동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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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사진임인영(북DB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