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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함’과 ‘잉여’는 이제 누구 한 사람, 어느 한 세대에만 구속된 말이 아니다. 우리 문화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레 하나의 축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90년대’라는 시간 역시 각종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나이를 불문하고 폭넓은 세대에게 사랑받으며 재조명되고 있다. 90년대를 배경으로 찌질한 말과 행동을 일삼는 인물들을 통해 폭발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았던 웹툰 ‘찌질의 역사’가 인기리에 연재를 마무리하며 단행본 출간 소식을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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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7일 서울 마포구 가톨릭청년회관에서는 <찌질의 역사>(이마/ 2017년/ 전3권) 출간기념 행사가 열렸다. 웹툰 '찌질의 역사'가 네이버에서 첫 연재를 하기 시작한 것이 2014년 여름. 완결까지 장장 3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김풍이 이야기의 전체적인 구상을 맡고, 심윤수는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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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의 역사’는 순수하면서도 치기 어린 시절을 뜨겁게 통과한 20대의 성장통을 담고 있다. 아름답게 포장하고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때로는 불편할 정도로 솔직하고, 날것에 가까울 정도로 미련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선보여 많은 독자의 호평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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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열린 출간기념 행사는 웹툰의 인기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인 만큼 성별을 불문하고 20~30대 애독자들 70명가량이 한자리에 모였다. 동료 만화가 주호민의 사회로, 김풍·심윤수는 독자들과 함께 그간 쌓인 흥미로운 비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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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만화를 구상하면서 웹툰보다는 책이 더 재미가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번에 책이 나온 걸 보면서 ‘드디어 올 게 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죠. 사실 이 만화를 시작하기 전에 영웅이 등장하는 만화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만화에 등장할 인물을 다 그려놓고, 심지어 1화의 대략적인 얼개까지 만들어 놓은 상태였죠. 그러다 제가 영화 ‘건축학개론’을 본 거예요. 영화로부터 만화의 영감을 받았고, 윤수에게 ‘새롭게 해보고 싶은 게 생겼다’라고 얘기했죠. 다행히도 윤수가 흔쾌히 응해줬고요.”(김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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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억과는 다른 게, 저는 이 만화를 하기 싫었어요.(웃음) 사실 저는 폭력물을 그리고 싶었거든요. 그때 마침 때리고 싶은 사람이 있기도 했고요.(웃음) 아, 그 사람이 풍이 형은 아녜요. 제가 키도 작고 후배이기도 하고, 싸우면 무조건 져요. 물론 계속 고치라고 연락이 와서 힘들긴 했지만요. 자고 있을 때도 수시로 전화가 왔거든요. 한때 제 전화기에 풍이 형 번호가 ‘김풍 트레이너’로 저장되어 있을 정도였죠. 트레이너가 강도 높은 운동을 시킬 때, 속으로 욕하기는 하지만 또 하다 보면 실력이 늘잖아요. 저 역시 풍이 형의 요청대로 하다 보면 결국 더 좋아지더라고요.”(심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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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과 심윤수는 대학 선후배 사이다. 김풍에게는 자신의 의도를 잘 파악해줄 수 있는 그림작가가 필요했고, 심윤수에게는 이야기의 구성보다 그림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글 작가가 필요했다. 이러한 김풍과 심윤수가 만나 의기투합한 웹툰 ‘찌질의 역사’는 90년대 대학가를 배경으로 당시 20대를 보낸 이들의 추억이 짙게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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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90년대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 독자들도 충분히 공감할 여지는 많다. 이를테면 첫사랑을 잊지 못한 채로 첫사랑과 이름이 같은 사람에게 고백하고, 새로 사귄 애인에게 첫사랑을 들먹이는 식의 이야기가 그렇다. 만화 속 인물들의 미욱함은 독자들 사이에서 ‘암을 유발한다’라고 할 정도로 화를 불러일으키지만, 그런데도 끝까지 보게끔 하는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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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분들이 제 경험담을 담았을 거로 생각하시는데, 대체 저의 어디를 봐서 그런 거죠?(웃음) 저의 실제 경험이라고 할 만한 이야기는 전체에서 30%밖에 안 돼요. 다만 제 친구들의 경험담은 많이 담겨 있어요. 이를테면 버블 시스터즈의 멤버 중 한 명이 저와 친한데, 중학교 때 짝사랑했던 교생선생님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거든요. 교생선생님이 학교를 떠날 때 울면서 악수를 했나 봐요. 그런데 선생님의 손에서 담배 냄새가 났고, 그게 너무 좋았다는 거죠. 그 이야기를 만화에 담았는데 사실 저는 이 만화에 담긴 이야기가 우리 모두의 모습이라 생각해요.”(김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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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무대의 첫 번째 손님으로는 뮤지션 이한철이 등장했다. 그는 김풍이 만화를 구상할 때 함께 술자리를 했던 기억을 털어놓았다. 김풍의 이야기는 집에 가서도 다시 생각이 났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고. 이한철은 김풍의 이야기를 듣고 쓴 곡 ‘타바코 레이디’를 열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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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철의 무대가 끝난 뒤로는 예고되지 않았던 깜짝 손님이 등장하기도 했다. 6월 6일 뮤지컬로 선보일 ‘찌질의 역사’의 주연을 맡은 박시환, 이휘종 배우였다. 뮤지컬 ‘찌질의 역사’는 인터파크에서 티켓을 판매함과 동시에 1위를 선점했을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은 바 있다. 이날 두 배우는 사전 설문조사를 통해 독자들이 꼽은 명대사를 직접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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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이 꼽은 명대사 3위는 민기의 대사 “내가 정말 많이 잘못했는데… 너도 잘못한 거 있는 거 알지?”였고, 2위는 기혁이의 대사 “누구나 각자 삶의 무게가 있다. 가벼운 무게도 누군가에겐 버거울 수 있고, 버거운 무게를 대수롭지 않게 짊어지는 사람도 있다. 너의 삶의 무게가 나보다 가벼우니 견뎌내라는 것만큼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건 없다”가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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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1위는 민기의 대사 “내가… 처음이야?”였다. 배우들이 1위에 선정된 대사를 직접 선보이자 관객석에서는 웃음 섞인 야유가 빗발쳤고, 김풍은 뮤지컬에서도 이런 즐거운 야유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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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는 가수 육중완이 등장해 무대를 한층 더 뜨겁게 달궜다. 육중완은 김풍을 향해 “거짓말도 잘하고 헛소리도 많이 하는데 그게 다 눈에 보여서 착한 사람이다”라며 거침없는 칭찬(?)을 하기도 했다. 육중완은 밤무대에서 만났던 건달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우스꽝스러웠던 경험을 털어놓으며 웃음을 자아냈고, 통기타 연주로 ‘봉숙이’와 ‘하도 오래되면’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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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중완의 무대에 이어 김풍·심윤수는 관객석에 자리한 독자들과 솔직 담백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독자들은 이들에게 궁금했던 것을 포스트잇에 미리 적어 보냈고, 무대에서는 독자들의 질문을 선정해 뮤지컬 티켓과 각종 서적 등 푸짐한 선물을 증정했다. 선물 가운데 김풍이 가져온 테이블 매트와 요리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직접 사용한 나무 도마가, 심윤수가 가져온 티셔츠와 남성용 속옷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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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함의 기준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라는 독자의 질문에 김풍은 “자신를 객관화하지 못한 상태에서 저지른 행동이 찌질한 것 같다”라고 답했고, 심윤수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누군가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한 행동이 찌질한 것 같다. 한마디 더 보태자면 스스로 행동에 반성이 없는 상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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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김풍은 “만화를 연재했을 당시에는 남성 독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연재를 끝내고서 메일을 받아보니 남자친구의 추천으로 보게 됐다는 여성 독자들의 이야기가 많아 놀랐다. 그간 소문을 타면서 성별을 불문하고 많은 인기를 얻었는데, 독자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앞으로 무대에 오를 뮤지컬도 많이 사랑해달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심윤수는 “연재를 하는 동안 새로이 그림학원에 다녔을 정도로 욕심이 있던 만화였다. 풍이 형으로 인해 힘들기도 했지만(웃음) 풍이 형은 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 사람이고, 형 덕분에 새로운 사람들을 알게 되어 기쁘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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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위즈덤하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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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사진윤효정(북DB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