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DB

2017년 04월 25일
북파크 카오스홀

[송호근 북잼토크] “촛불 엄마와 태극기 노인을 어떻게 같이 춤추게 할 것인가 고민”

등록일 2017.04.28
조회10,330

4월 25일 저녁 서울 한남동의 복합문화공간 북파크. 날이 어둑해지자 조용하던 공간이 북적이기 시작하더니 작지 않은 강연장이 금세 사람들로 가득 찼다.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과 퇴근하자마자 부리나케 달려온 듯 정장 차림을 한 중년, 자녀와 함께 강연장을 찾은 부모님, 다양한 사람들이 한 데 모였다.

이날 북잼토크의 주인공은 소설 <강화도>(나남출판/ 2017년)를 쓴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그는 소설가로서 대중 앞에 서는 게 처음이라 설렌다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동안 해왔던 강연과는 달리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기쁘다며, 그는 자신의 삶이 다른 이들의 고민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주고 싶어했다. 40년 동안 한국사회의 여러 현상들을 냉정하게 분석해온 사회학자가 처음으로 자기 삶을 얘기하는 모습에선 설렘과 수줍음마저 느껴졌다.

강연은 사회학자의 매서운 눈매와 무거운 언어가 아닌 현실을 끌어안는 소설가의 시선, 청중과 소통하는 유머의 언어가 대신했다.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도 그가 들려준 삶의 궤적에는 문학과 현실 사이에 서 있는 학자로서, 경계인으로서의 고민이 오롯했다.

“경계인의 운명은 경계의 영역을 넓히며 꿋꿋하고 외롭게 흘러가는 것뿐”

“사람들이 ‘어쩌다 작가가 됐느냐’고 묻대요. 현실과 문학 사이를 오가며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대학 시절의 꿈이 이제야 개화되는 느낌이에요. 학자에서 칼럼니스트로, 드디어 작가로 진화한 거죠.”

중고등학교 시절 인생의 목표도 없고 자의식도 없던 때였지만, 김소월의 시를 읽으며 자랐고 김춘수와 서정주의 시를 외우며 다녔다. 글과 함께 성장한 그는 대학에서도 문학인들과 어울렸다. 문학에서 인생의 답을 찾으려 했던 대학 시절, 캠퍼스에는 이성복과 황지우가 있었고 ‘열등감에 인생 흘러가겠다’는 생각에 시 쓰기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며 사회학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그는 현실과 문학 사이를 맴돌았다.

처음 번역한 <철학과 예술 사회학>을 시작으로 서른 권에 가까운 책을 냈지만, 그가 학자로서 쓴 글에는 메마른 논리만 가득했다. <인민의 탄생> <시민의 탄생>이 그랬다. 자기 생각이 빠진 글에 회의가 들었고 문학의 언어가 그리웠다.

“<이분법 사회를 넘어서>를 썼다가 학계에서 야단을 많이 받았어요. 가볍다고. 작가를 흉내를 좀 내서 <나는 시민인가> <나타샤와 자작나무>를 썼는데 읽는 사람이 없어요.(웃음) 물론 골방에서 글을 쓰는 학자도 쓸쓸하지만 읽어주는 사람이 없는 작가는 정말 쓸쓸해요.”

2013년에 쓴 <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는 그의 책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송호근 교수는 그 자신이 베이비부머 세대의 맏형으로 베이비부머의 삶을 연구하고 싶었고, 동시에 그들의 심정을 작가의 언어로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의 삶을 인정받고 싶고,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고 싶은 50대들은 가슴 속 울음을 뱉어내며 송호근 교수의 언어에 위로받았다. 학자의 논리에 작가 흉내까지 합쳐져 대중과 호흡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광장 옆 태극기 물결을 보니 가슴이 먹먹해졌어요.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판단이 어렵더라고요. 땅에 엎드려 통곡하는 어른을 보고 환호할 수 있나? 그런 고뇌를 안고 강화도로 간 거예요.”

1876년 강화도는 한강을 지키는 요새였다. 검은 연기를 뿜으며 강화도를 향해 오는 외항선 12척을 맞은 건 당시 외교책임자 신헌이었다. 그때 조선은 척사론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사대부는 관념론으로 함선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신헌은 사대부 안에서 들끓는 관념의 힘을 알았지만, 무력의 힘도 모르지 않았다. 관념과 무력이 충돌하고 봉건과 근대가 부딪치는 최전선에서 신헌은 어느 쪽에도 발붙이지 못하는 경계인이 돼버린다.

송호근 교수가 슬픔의 접점인 강화도를 찾아간 것은 1876년의 강화도가 지금의 광화문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병립할 수 없는 상황을 경계인 신헌은 어떻게 해결했는지, 광화문을 경계인으로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했기에 신헌의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가 소설의 언어를 빌어 신헌의 삶을 보여줄 때도, 우리가 놓치는 것이 무엇인지 ‘촛불’과 ‘태극기’를 경험한 학자로서의 물음을 잊지 않았다.

“앞으로 무심히 나아가는 흑풍 위에서 신헌은 아침 햇살을 맞았다. 마재를 찾아가던 그 아침 햇살처럼 눈부셨다.”(290쪽)

그는 책의 결말부에 나오는 문장을 직접 소리 내 읽어주며, 경계인의 임무이자 운명은 경계의 영역을 넓히며 꿋꿋하고 외롭게 흘러가는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스스로 가장 마음에 든다는 그 문장에서, 딜레마에 갇힌 2017년 한국사회를 향한 그의 바람이 느껴졌다.

“정신 속에 그어진 DMZ를 어떻게 융해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청중들이 던진 질문에서, 새로운 시대정신을 얼마나 갈망하고 있는지가 느껴졌다. 현장에서 오간 질문들을 아래에 옮겨본다.

Q <강화도>는 문체가 간결하고 경쾌하게 느껴진다. 송호근만의 문체는 어떻게 탄생했나?

문장은 인격이고 또 정신의 치열함을 보여준다. 문장으로 모든 게 결정된다. 주인공과 나의 고민이 겹치는 부분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고 작가가 주인공과 같이 허우적대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Q 강연회에 부모님과 같이 온 학생들도 많아 보인다. 기성세대가 자녀 세대에 전해줘야 할 역사인식은 무엇일까?

우리가 모든 역사에 대해 다 알 수는 없다.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사건이나 현상을 파고 들어가면 그게 확산되면서 역사적 현상이 현재에 펼쳐진다. 인물이든 사건이든 하나에 집중을 해서 그 인물이 왜 그랬을까, 그 사건은 어떻게 진화됐을까, 고민하며 현실과 접목하는 것이 역사인식이라고 본다.

Q 사회학자로서 또 소설가로서 지난겨울 광화문광장을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하다.

사회학자로서 시민들과 호흡을 같이 하려고 촛불집회에 서너 번 나갔다. 보이지 않는 국민주권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광화문에 내려앉은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동시에 촛불집회에 애를 업고 나온 사람과 태극기를 흔들며 땅에 주저앉은 사람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이들이 같이 춤추게 할 것인가 고민했다. 그게 환상일 수도 있지만 나의 현실과 당신의 현실을 감싸 안는 문학의 힘에 대해 생각했다.

Q 신헌이라는 인물을 경계인으로 규정했다. 그간의 책들을 보면 사회학자로서 남북통일에도 관심이 있을 것 같은데, 통일을 생각할 때 어떤 경계를 고민해야 할지 듣고 싶다.

지금 사드와 칼빈슨호 얘기로 시끄러운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놓은 불안감을 무너뜨리는 게 중요하다. 그럼 화해의 언어가 새로 생기고 그래야 정치적으로 통일이 가능하다고 본다. 칼빈슨호는 안보와 전쟁을 같이 가져온다. 소설에서도 전함이 무력을 가져옴과 동시에 천주교가 구원을 가져오지 않나. 정신 속에 그어진 DMZ를 어떻게 융해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Q 대선을 앞두고 모든 후보들이 청년의 마음을 두드리려고 노력하지만, 청년들은 소망이 없는 느낌이다. 기성세대로서 지금의 사회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청년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궁금하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죄지은 것 같아 괴롭다. 정책적인 답을 한다면, 아무것도 안 해도 살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나도 대학 시절 방황하며 살았지만 어쩌다 교수도 되고 작가도 됐다. 방황해도 자기 성정에 맞는 일을 하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최근 대선주자들이 하는 얘기는 듣고 싶지 않다. 전혀 가슴에 와닿지 않는 말로 공방하는 걸 보면, 낯선 음식을 먹는 것 같아서 버리게 된다. 광장에 내려앉은 주권을 보이게 만들어줘야 하는데, 다시 주권으로부터 소외되는 것 아닌가 싶어 슬픈 시간처럼 느껴진다. 너무 비관적이라 술 한잔 해야 할 것 같다.(웃음)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by 글/사진정윤영(북DB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