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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듯 여러분과 행복하게 만났던 시간도 어느덧 마지막입니다. 삶을 살다보니 언제부터인가 '행복한 삶'보다는 '불행하지 않은 삶'을 원하게 되더군요. 한데 여행을 다녀오면 잠시나마 '행복한 삶'을 다시금 꿈꾸게 됩니다.

***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방 안은 말끔하게 정리돼 있었고 데런은 보이지 않았다. 언제쯤 간 것일까. 멍한 정신을 부여잡은 채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가 휴대폰 메시지 알람을 듣고 눈이 번쩍 뜨였다.

3 콘듀이트, 이질적인 것들의 충돌 *** 5일째 인혜로부터 연락이 없다고 하자 데런은 벤로막Benromach 오가닉 위스키 한 병을 들고 호텔방을 찾아왔다.

*** 데런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인혜 역시 연락이 없다. 데런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그는 어제 그렇게 가버린 데 대한 미안한 마음을 다시 전하면서 쳰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 데런이 나를 이끌고 간 곳은 큰 규모를 자랑하는 부다바Buddha Bar였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홀 안쪽 맞은편 벽면을 거의 다 차지한 채 앉아 있는 거대한 불상이 보였다. 데런이 잠깐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마침 한 동양 남자가 다가와 반겼다.

2 리치몬드의 기억 *** 꼬박 하루가 지나도록 인혜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내가 먼저 전화하지 않기로 했던 원칙을 지금까지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

*** 데런을 먼저 보내고 바람도 쐴 겸 잠시 걷다가 작은 향수 가게가 눈에 띄어 안으로 들어가봤다. 식당에서 일어서기 전 데런은 향수 브랜드 론칭 얘기가 농담이 아니라면서 제법 구체적인 계획을 털어놨다.

*** 인혜는 평일 한낮에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시내 길을 걷다가 돌바닥으로부터 전해지는 감촉이 좋다며 신발을 벗어 들고 걷기를 좋아했다. - 서울에서 이러면 미친년이라고 하겠지?

*** 저녁이 다 되어 호텔을 다시 찾아온 데런은 카나비 스트리트Carnaby Street에 있는 한 식당을 예약해놨다고 했다. “네 친절이 고맙긴 하지만 해고될까봐 걱정되는군.”

*** 직원이 투숙 절차를 밟는 동안 주변을 둘러봤다. 투박하고 오래돼 보이는 외관과 달리 호텔 내부는 세련되고 현대적인 느낌으로 가득했다. 강렬한 원색으로 채워진 사방 벽면과 높은 아치형 천장, 그리고 상단 벽에 걸려 있는 추상 회화 작품들이 어딘지 초현실적인 감성을 자아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