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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 “사전이 살아남는 법? ’찾아보는 사전’에서 ‘읽는 사전’ 돼야”

등록일 2017.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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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을 가장 먼저 떠올릴까? 재미도 없는 딱딱한 설명이 빼곡하게 적힌 엄청나게 두꺼운 무엇. 그저 외워야 할 어떤 것, 혹은 정복해야 할 대상이기도 한 무엇. 한 번도 책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고 그래서 학창시절이 끝남과 동시에 책장에 처박아두게 되는 그런 것.

그러나 빽빽하게 정보를 담고 있는 사전에서 양식미를 발견하고 사전의 매력에 빠진 사람이 있다. 사전 편찬자라고 불리는 걸 더 좋아한다는 웹 사전 기획자 정철의 얘기다. <검색, 사전을 삼키다>(사계절/ 2016년)에서 몰락해가는 사전의 현재를 전달한 그가 이번에는 우리 사전의 과거를 찾아 사전 편찬자들을 만났다. 미래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알아야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최후의 사전 편찬자들>(사계절/ 2017년)에는 우리 곁에 있는 단어를 모으고 엮는 일의 치열함과 사전 만드는 사람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 사전의 역사를 듣고 있노라면, 책장 가장 아래 깊숙이 처박혀있을 오래된 사전을 꺼내보고 싶어진다.

사전, 만드는 사람은 없고 유통하는 매체만 남았다

그는 사전의 검색 가능성, 그러니까 단어의 뜻이 사전에 있어서 필요할 때마다 찾기만 하면 되고 그게 우리 기억을 보완해 준다는 점이 좋다고 했다. 사전은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로만 소비되지만 사실 사전은 우리 생각과 경험을 확장시키고, 우리가 사는 세계를 체계적으로 압축해 놓은 책이다. 어떤 단어의 뜻을 알고 싶어 사전을 펼치면 기본적인 뜻뿐 아니라 관련된 다양한 개념들도 함께 설명돼 있는 걸 보면 정말 그렇다.

그러나 웹 사전에선 이런 균형감을 찾기가 어렵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정보만을 다루기 때문이다. 재미 위주의 설명이 많고 잘못된 정보도 적지 않다. 물론 웹 사전이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고, 접근이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사전 편찬이 처한 상황은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일단 20년 전과 비교해서 바뀌지 않은 내용들이 많다. 개선해야 할 내용은 점점 많아지지만 그럴 수 있는 여력은 없다.

사전을 만들 때는 기획하고 집필하는 사람부터 검토하고 편집하는 사람, 유통하고 홍보까지 사람이 필요하다. 전에는 담당자가 모두 있었지만 지금은 온라인에서 유통하는 사람만 남았다. 사전을 만드는 사람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 없다. 그가 사전 편찬자를 만나고, 책을 쓴 것은 이런 답답한 현실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전의 현실부터 사전 편찬의 과거와 미래까지, 사전 편찬자가 만난 사전 편찬자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어보았다.

Q 인터뷰 한 모든 분들의 공통적인 고민은 규범과 관련한 문제였어요. 언어의 사회성은 언어를 연구하는 사람에게도 사용하는 사람에게도 늘 어려운 문제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사실 사전은 사람들이 언어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 정리하는 거죠. 그런데 언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조정할 것들이 생기잖아요. 그게 규범이죠. 그러니까 규범은 변화를 막는 게 아니라 정돈해 주는 역할을 해요. 그런데 한국은 유독 국가가 언어를 컨트롤 하려고 해요. 국가기관은 보수적이라 언어를 못 따라가요. 그러니까 실제 언중들 삶과 동떨어진 규범이 많아요. 모두가 ‘짜장면’으로 쓰는데 아주 오랫동안 ‘자장면’으로 우기다가 결국 ‘짜장면’으로 인정했잖아요. 국가가 인정하든 안하든 사람들은 그 말을 쓰는데, 인정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거죠. 그런데 사전을 편찬하는 입장에선 규범으로 옥죄니까 고민을 하게 되죠.

Q 보수적인 기관인데, 사전을 만들 때 용어들을 미국식으로 표준화하는 건 또 의외예요. 책에서그게 힘의 논리에 따른 결과라는 얘기도 인상적이었고요.

거의 모든 전문용어가 미국용어로 바뀌고 있어요. 나트륨은 소듐, 칼륨은 포타슘으로 바뀌었죠. 세계적 추세에 따른 거라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그 말은 나트륨을 우리말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해외에서 어떻게 바뀌든 우리는 나트륨이라고 쓰면 돼요.

우리가 외래어 표기할 때 한국에서 쓰지 않는 음절로 표현하려고 하면 어색하고 소통이 잘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방송에서 말할 때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고 하면서 자막엔 ‘리어나드 디캐프리오’로 쓰는 분열적 행동을 하게 되는 거예요. 이게 다 사대적인 행동이에요. 사실 외국 사람들은 아무 관심이 없는데.(웃음)

Q 포털사이트에 영한사전이 왜 한국어 사전보다 앞에 위치하느냐는 사람들의 항의는 정말 모순이에요. 우리말에 대한 애정이 이상하게 발현된다는 생각도 들고요.

요새 많이 쓰는 표현으로 ‘국뽕’(자국을 향한 자긍심에 지나치게 도취된 감정 상태-편집자 주)이잖아요. 자존감이 없는 거예요. 어떤 부분은 열등감이 드러나는데 또 어떤 데서는 허세를 부리는 분열적인 행동이 보여요. 사람들 사고도 언어로 이루어져있고, 언어가 굉장히 많은 걸 규정해요.

Q 사전이 남성적이라는 지적도 놀라웠어요. 사실 언어에도 가부장 문화라든자 성차별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을 텐데, 사전을 만들고 언어를 다루시면서 그런 걸 많이 느끼셨나요?

요즘 난리예요. 지난 해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에 사람들이 달라졌어요. 그 사건을 분기점으로 행동하기 시작했죠. 그게 사전에선 어떻게 반영되고 있느냐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제보를 해요. 사전에 사랑을 이성끼리만 하는 거라고 써놨는데, 동성끼리 하는 것은 사랑 아니냐는 지적을 하세요. 맞는 지적이잖아요. 이것처럼 고쳐야할 게 어마어마하게 많은 거예요. 그나마 한국어는 보완작업을 하는데 다른 사전은 전혀 안 해요. 그러니까 외국인들이 18세기에나 썼던 단어를 쓰고 있는 셈이에요.

우리 사전은 빈사 상태...검증 가능성 높이는 단계로 나아가야

Q 새로운 언어를 받아들이고, 외래어를 우리말로 표기할 때 생기는 어려움을 말씀하셨는데요, ‘한창기’라는 인물이 대안까지는 모르겠지만 사전 편찬자로서 고민해봐야 하는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한창기 씨는 60년대에 브리태니커 영문판을 판매한 사람이었는데, 현대적인 세일즈를 처음 도입했어요. 어떻게 하면 좋은 책을 잘 팔 수 있을까 고민한 사람이었고요. 이렇게만 보면 훌륭한 장사꾼인데, 그렇게 번 돈으로 우리 문화재를 수집하고 복원했어요. 핵심은 ‘뿌리깊은 나무’라는 잡지고요. 그 때 다른 잡지들은 거의 일본 것을 베껴서 팔았거든요. ‘뿌리깊은 나무’는 판형이나 편집은 서구적인 스타일을 따랐는데 내용은 한국적이었어요. 세련된 기술에 가장 토속적인 것을 담았고 아주 매력적이죠. 그분은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잘 소화할까를 고민한 사람이에요. 그런 걸 보면 우리가 세련돼진 것 같기는 한데, 잘 하고 있는 건지, 미래를 보고 가는 건지 여러 고민이 생기죠. 롤모델이라고 하기엔 제가 따라할 수조차 없는 분이지만, 그 태도만큼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Q 사전은 단순히 한 번 읽고 마는 게 아니라 읽고 생각하게 하는 거라고 하셨어요. 사전이 책으로 읽히려면 정보를 수정하고 보완하는 것 말고 어떤 게 필요할까요?

사전이 재밌어지고 책이라는 형태로 남으려면, 지금과는 다른 사전이어야 돼요. 일본에는 ‘신명해사전’이라고 있는데, 기존 사전과 뜻풀이를 다르게 해서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가 있어요. 비교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우리가 뭔가를 인식할 때 차이를 인식해요. 그래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니까요. 그게 가능해지려면 다른 관점이 필요하죠. 찾아보는 사전이 아니라 읽는 사전이 되면 살아남을 수 있어요.

Q 인터뷰 하시면서 다섯 편찬자에게 어떤 사전을 만들고 싶은지 질문하셨는데, 저도 같은 질문을 하고 싶어요. 미래의 사전으로 어떤 사전을 꿈꾸시나요?

검증 가능한 사전을 만들고 싶어요. 사전을 보고 그 내용을 손쉽게 확인 가능한 사전을 만들고 싶어요. 그럼 서로 검토가 가능해지거든요. 내용이 더 정밀해지고 거짓말을 못 쓰는 거죠. 사전이 여러 개 있어야 한다는 것도 비교하기 위해서이고요. 주관이라는 함정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최대한 객관적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 필요가 있어요. 지금 우리 사전은 검증 가능성을 높이는 단계로 나아가야하지 않나 싶어요.

Q 마지막으로 <최후의 사전 편찬자들>을 읽는 사람들, 또는 종이 사전이 사라져가는 걸 아쉬워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이 책을 읽는 몇 시간 동안 제 얘기에 귀를 기울여주신 거잖아요. 그 자체가 너무 고맙더라고요. 그 얘기를 먼저 하고 싶고요. 그리고 제가 책을 쓴 목적은 하나예요. ‘사전이 죽어가고 있다, 사전에 돈을 써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런 얘기를 주변 사람들과 나눠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죠. 우리가 공기처럼 사전을 당연하게 쓰고 있지만 지금 빈사상태거든요. 제대로 만들려면 사전도 많이 보고, 잘못된 정보를 지적하고 개선하라고 포털에 요구해야 해요. 이런 행동을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사방에서 요구하면 달라지거든요. 여러 곳에서 이런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해요.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by 글/사진정윤영(북DB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