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DB

르누아르의 작품은 세상의 빛과 행복을 모두 화폭에 옮긴 듯 따스하다. 특히 〈가브리엘과 장 (Gabrielle et Jean)〉은 르누아르의 어린 아들 장과 유모 가브리엘이 다정하게 놀이하는 모습을 담았다. 아기와 놀아주는 그림은 아름답지만 솔직히 아기와 놀아주는 아빠 엄마의 현실이 늘 그림처럼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미술 놀이를 통해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들이 참으로 다양하다. 어린 시절 나는 잘 그려진 그림이 어떤 모습인지 알고는 있었지만 테크닉이 따라가지 못해 그림을 망치기 일쑤였다. 그래도 부단히 머릿속의 이미지를 따라가려 애쓰다 보니 시행착오는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 고가의 유아용 교재를 구입하신 적이 있었다. 아이의 발달에 따라 한 권씩 차례로 풀어나가는 얇은 책자 세트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 책자 뒤편에 스티커를 붙이는 페이지가 있었다. 스티커 페이지에서 스티커를 떼어내 정해진 자리에 붙이는 놀이 활동 페이지였다.

20개월 무렵의 아이에게 ‘그리기’는 곧 ‘끼적임’이다. 어떠한 형태, 색깔, 주제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도구로 색을 칠하며 즐거워하는 행위 자체가 미술 활동이기에 이 시기에는 아이의 발달 단계에 맞게 아이가 최대한 즐길 수 있는 놀이를 함께하는 것이 좋다.

아이가 엄마, 아빠와 같은 간단한 단어를 말하기 시작할 때였다. 동화책을 넘겨보다가 아는 이미지가 나오면 “음매”, “토끼”, “사슴”, “아기” 등 두세 음절의 단어를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 눈에 밟히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동화책 일러스트였다.

목도 가누지 못하는 아기가 까만 눈동자를 깜빡이며 가까운 세계를 눈에 담기 시작한다. 생후 3개월까지 아기는 색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갓 태어난 아기에게 세상은 초점이 맞지 않은 흐릿한 흑백 영상일 뿐이다.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나는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게 되었다. 하지만 사실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서 가끔 나에게 달린 ‘엄마’라는 호칭의 무게에 화들짝 놀랄 때가 있다. 내가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생각하게 되고, 괜스레 부족한 엄마의 모습이 미안해질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