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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②] 황석영 작가, 또 그렇게 살라고? 그건 아니지

-여러 인물과 시대가 시간 순서 없이 등장하잖아요. 그 중심축이 돼준 주제가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불과 15년 전 이야기예요. 개발 독재 시대 이후 한국 자본주의가 재생산 구조를 갖추면서 심화 발전해 여기까지 왔는데, 그간 두 번의 고비가 있었어. 하나는 1997년 IMF 체제에 들어간 거고, 다른 하나는 2년 전 금융 위기를 크게 맞은 것. 이 두 번의 좌절을 통해서 지난 15년이 정리정돈된다고. 그러니까 지금쯤 돌아봐야 되는 거야. 사회나 개인이나 마찬가지예요. 누구든지 살면서 저질러놓은 일이 있고, 상처가 있어. 그걸 대충 땜빵하는 걸 ‘구멍마개’라 그러는데, 사회심리학 용어로는 스톱갭(Stopgap, 임시방편)이지. 어느 시점에 들어서면 돌아가서 그걸 열어봐야 해요. 그 구멍의 심연을 확인해야 성장하거든. 사회도 똑같아. 스쳐 지나가면서 땜빵한 것을 열어봐야 ‘열린 사회’가 되는 거지. 그냥 묻어두면 파시즘 체제가 된다고. 이제 그 구멍을 열 때가 됐어요. 반성해야 돼. 지금 금융 위기 이후로 중산층 세 명 중 한 명은 몰락하고 있잖아. 과연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 그런 자상을 지금 30~40대가 하고 있단 말이야. 그래서 난 이 책을 30~40대가 많이 봐야 한다고 그래요. 봐요, 과거에 인생 목표란 건 그냥 007 가방 들고 뛰면서 자정까지 사무실 불 밝혀서 강남 근처에 평범한 아파트 하나 겨우 장만하는 거였어. 다른 하나는 애들 학교 보내는 거고. 그게 50~60대 중산층의 상징이었잖아. 그 두 가지에 인생을 바쳤는데, 또 그렇게 살라고? 그건 아니라는 거지.

-요즘 20대는 차라리 프리터처럼 사는 게 낫다고들 하죠.

삶의 가치가 바뀌는 거지. 그런 점에서 <강남몽>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을 갖고 젊은 세대, 중간 세대들과 얘기하는 거야. 이것이 내가 작품을 쓴 동기랄까,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던 배경이랄까, 이런 게 되겠네요.

-<강남몽>을 연재한 웹페이지 ‘몽방’ 누리꾼들과 4월께 만나셨잖아요. 그때 하신 말씀이 인상적이었어요. “빛나는 개인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왔다. 그들이 자랑스럽다.”

그 얘기 다시 한 번 강조하겠습니다. 거 왜, 근대화 세력이니 산업화 세력이니 민주화 세력이니 애매모호하게 서로 잘났다고 하는데, 그런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근대화한 게 아니에요. 이름 없는 영혼들이 밤새워 가며 가발 다듬고, 납땜질하고, 넥타이 매고 사무실 지키고, 해외서 햄버거 사먹으며 뛰어다니면서 한 거야. 수많은 개인들이 한 겁니다.

-<강남몽>에서 그 ‘빛나는 개인’을 상징하는 임정아 캐릭터가 너무 조금 나와 아쉬웠어요.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에도, 실제로 여직원이 살아남은 뉴스가 있었죠?

그게 모델이지. 사실 6장까지 있었는데 소설 분량이나 독자 호흡을 고려해 잘랐어요. 그래도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임정아가 당시에는 가장 어린 세대였잖아.

-어떻게 다 취재를 하셨어요?

옛날 신문 복사해서 쌓아놓고, 자료 보조해 주는 사람들이 도와줬지. 문단 친구들은 그렇게 많으면 자료에 치인다고 걱정했는데, 이렇게 사샥!(웃음) 실존 인물과 잘못 연결시키면 법적으로 문제가 되니까, 온갖 장치를 했어요. 이름이랑 스토리도 섞고. 근데 다 알더라고.

-<강남몽> 이후 15년의 이야기를 쓰실 계획은 없으세요?

요새 얘기? 사실 소설은 동작이 늦어서 한두 걸음 더디게 가요. 총체적으로 결정이 난 것들을 대상으로 삼지. 이주 노동자라든지 국제결혼 얘기라든지, 요새 얘기로 단편 소설은 금세 쓰는데 장편은 총체화해야 하니까. 소설이란 게 원래 그래. 현재의 문제는 <강남몽> 안에 다 들어 있어요. 경제 구조, 정치 구조도 그렇고 개발 건설 위주의 정책도 예전에 하던 관성에 의해서 밀려들어오는 거지. 과거가 현재의 뿌리야.

-<강남몽>에서 1995년까지를 나름대로 정리해 주셨는데,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15년은 어떤 시대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이제 2년만 지나면 ‘황석영 문학 50년’이에요. 지금까지 48년을 해왔다는 얘긴데, 내가 망명하고 투옥된 시기가 전반기, 이제 후반기 문학이지. 후반기 문학에 뭔가 기둥을 하나 세우고 만년 문학으로 넘어갈 것 같아. 곧 일흔이니까 그때부터. 이미 얘기가 많이 나왔어. 철도원 3대를 그린 작품인데, 20년 전 <장길산> 이후 대하소설로 쓰려던 프로젝트야. 그 15년을 녹여낼 거예요. 분량은 <무기의 그늘> 정도가 되겠네. 두꺼운 장편으로 서너 권. 예술적으로 아름다운 작품을 쓰려고 해요. 내가 매번 형식을 바꾸니까.

-다작하시면서, 새로움에 대한 고민도 많으셨겠어요.

1998년 이후 해온 작업이 ‘어떻게 하면 보편적 현실을 놓치지 않으면서 새로운 형식에 담아낼까’였어. 짐작했겠지만 <오래된 정원> 이후 모든 소설의 형식이 다 달라요. 그런 형식 실험을 계속 해나갈 거야. 황석영이 쓰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이 쓰는 것처럼 매번 달라지는 거예요.

-그 실험의 궁극적인 목표점은 무엇인가요?

그저 체력이 닿는 한 열심히 쓰려고.(웃음) 앞으로 20년 더 쓰는 게 내 희망인데, 80대 말까지 쓰는 거지. 전자책도 나오고 바야흐로 영상과 전자책의 시대야. 이게 앞으로 문화 주류를 이루지 않을까 싶어요. 아이패드처럼 전자책과 컴퓨터가 다 되는 것도 있잖아. 미디어가 활성화되면, 거기에 콘텐츠도 동원이 되겠지. 근데 사람들이 디지털화를 두려워하는데, 왜들 그래? 사람 자체가 아날로그인데. 우리 삶이 있으니까, 아날로그 콘텐츠는 영원한 거죠. 그래서 젊은 사람들에게 종종 지금은 디지로그 시대란 말을 해요.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하는 시대. 참 좋아, 안 그래요?(웃음)

강남몽